오디오 해설

전사

박수근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근대화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12살 때 우연히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을 화집에서 보고 감동을 받아,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밀레의 작품이 평범한 농부의 일상을 소재로 하면서도 마치 종교화를 보는 것 같은 성스러움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박수근의 작품 또한 평범한 한국인들의 소박한 일상과 노동, 그리고 놀이를 소재로 하게 됩니다.

박수근의 작품은 화면 전체에 화강암과 같은 두꺼운 물감층으로 뒤덮여 있는데, 이는 당시 한국의 다른 작가에게서는 볼 수 없는 혁신적이고 독보적인 방식입니다. 화강암은 한반도 전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돌인데, 오랜 세월을 견뎌낸 거칠고 단단한 특성으로 인해,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의 미의식을 반영하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수근은 북한의 고구려 고분벽화 발굴에 영감을 얻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무덤 안 석조 벽면에 그려진 벽화의 질감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박수근 작품을 통틀어 놀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주제는 자주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대표작입니다.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의 따뜻한 연대감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소담한 초가집 앞에서 아이들은 다함께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있는데, 화면 구석의 한 아이만은 등에 아기를 업고 돌보는 일을 하느라 친구들 무리에 끼지 못한 채 이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