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해설

전사

변월룡은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일리야 레핀 미술아카데미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수학하고, 이곳에서 교수를 지냈습니다. 그는 유화, 에칭, 드로잉으로 제작된 다수의 아름다운 초상화와 풍경화를 남겼으며, 평생 소수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하였습니다. 그가 죽는 날까지 고수했던 한국식 이름이 바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1953년 변월룡은 소련 문화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을 방문해, 15개월 동안 체류하게 됩니다. 그는 북한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평양미술대학을 러시아 미술아카데미를 모범 삼아 재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과 실기를 가르쳤습니다. 이때 북한의 예술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초상화와 함께 북한의 아름다운 산천 풍경, 소박한 민중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1953년 9월 판문점 휴전회담장>은 그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제작한 작품으로, 아카데믹한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절충된 상트페테르부르크 특유의 화풍을 보여줍니다.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 이 작품은 판문점의 회담장을 그린 작품입니다. 남북한의 휴전 협정이 체결되고 전쟁 포로 교환이 이루어진 바로 그 장소이지요. 러시아에서 태어나 모국 땅을 처음 밟은 변월룡은 역사적 사건의 증인으로서 이 작품을 남겼습니다. 사람 한 명 없는 적막한 회담장 내부와 달리 창 너머 바깥이 너무 밝아서 역사적 비극이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