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해설
전사
나혜석은 1896년에 태어나 한국에서 처음으로 서양화를 공부한 여성 화가였습니다. 1913년 도쿄여자미술학교 서양화부에 입학했고, 귀국 후 1921년 서울에서 첫 양화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 당시 서양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선구적이고 이례적인 기록입니다.
나혜석은 또한 여성해방운동에 일찍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신여자'라는 잡지를 만들고, 수많은 여성해방 관련 글을 기고하며, 삽화를 그리고, 소설을 쓰는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신여성'이었습니다. 변호사 출신으로 외교관이 된 남편을 따라 1927년 유럽과 미국을 1년 9개월간 여행한 경험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파리 체류 시기, 로제 비시에르(Roger Bissiere)가 운영하던 스튜디오에서 공부한 이력도 있습니다. 이때 이후 초기의 인상파적인 작품에서부터 변모하여 화가의 내면 상태를 주관적으로 표출하는 대담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자화상'으로 알려진 이 작품 또한 대상의 묘사에 충실하다기보다, 어둡고 우울한 정조를 강조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나혜석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이들은 이혼했습니다. 당시 이혼녀는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었지만 오히려 나혜석은 이혼의 이유를 낱낱이 밝히고, 독립적인 주체로서 여성의 자율권을 끊임없이 주장했습니다. 또한,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니요, 오직 취미일 뿐'이라는 당시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주장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점차 가족과 사회 전체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하였고,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가 1948년,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