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해설
전사
이쾌대는 도쿄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후 1939년 귀국하여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며 화단의 주도적 인물로 부상했습니다. 1945년 해방 후 극심한 사회 혼란 속에서도 그는 작업에 매진하였고, 이 시기 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미군의 포로 신세가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1953년 남북 휴전협정 체결시 포로교환이 있었을 때, 이쾌대는 북을 택했습니다.
전쟁 후 남측 정부는 오랫동안 월북 작가에 대한 언급을 금지했습니다. 남측에서 이들 작품을 연구하고 전시할 수 있게 된 것은 1988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졌으며, 이쾌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남쪽에 남아 이쾌대의 작품을 수십 년간 소중히 보관해온 바로 그의 가족들 덕분에 그의 작품이 알려지게 되었고, 결국 그의 예술적 성취가 제대로 조명받게 되었습니다.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은 전문적인 화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꽉 다문 입술과 부릅뜬 눈으로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화가는 뚜렷한 확신에 차 있습니다. 이쾌대는 서양식 페도라를 쓰고있는데, 이 모자는 근대기 한국 엘리트 남성들이 자주 착용하던 것이고, 왼손에는 서양화 제작을 위한 팔레트를 들고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공존한다는 점이 특징인데요. 이런 서양화 도구들과 함께, 한국의 수묵화나 서예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모필이 병치되고 있는 점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화가는 한국의 전통 복장인 푸른 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으며,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 또한 한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채 한국적인 요소를 더하고 있습니다.